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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간 성균관 지킨 은행나무 문화재 지정

500년간 성균관 지킨 은행나무 문화재 지정

  • 오은정 기자
  • 승인 2014.01.1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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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종로구의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와 바위글씨인 <삼청동문>, <백호정>, <월암동> 3건을 각각 서울시 기념물과 문화재자료로 지정·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기념물 : 서울시 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무형문화재) 중 한 종류로 역사 유적지·고고 유적·전통적 경승지(경치나 경관이 뛰어난 곳)·식물 중에서 학술적·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을 지정함. 현재 서울시 기념물은 <화양동 느티나무>, <세검정 터>, <화의군 이영 묘역>, <불암산성> 등 총 32건 지정.
※ 문화재자료 :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토문화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문화재.

현재 서울시 문화재자료에는 <옥인동 박노수 가옥>, <지장사 약사불도>, <백사 이항복 집터(필운대)> 등 총 56건이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 내에는 행단을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4그루가 있는데, 명륜당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59호 <서울 문묘 은행나무>로 지정되어 이미 보존되고 있으며, 이번에 지정하고자 하는 나무 두 그루는 대성전(大成殿)의 앞뜰에 위치하고 있다.

신삼문(神三門)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편의 은행나무는 흉고직경(胸高直徑)이 2.41m, 서편의 것은 2.74m로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수령을 측정한 결과, 두 그루 모두 450±50년의 노거수로 확인되었다.
※ 행단(杏壇) : 옛날 공자(孔子)가 사수(泗洙)에서 그 제자들을 가르치던 유지(遺址)로, 은행나무가 있는 단. 살구나무 또는 앵두나무가 있는 단이란 뜻도 있음. 공자묘(孔子廟)나 공자 사당에는 대개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이라 칭하기도 함.
※ 흉고직경(胸高直徑) : 가슴 높이에서 잰 수목의 직경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송자대전’ 등의 사료에서 조선 중종조에 동지성균관사였던 윤탁(尹倬, 1472~1534)이 성균관에 은행나무 2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 시기가 본 은행나무의 수령 측정결과와 부합하고 있어 기록상의 은행나무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는 숙종 37년(1711)부터 헌종에 이르기까지 비바람을 맞아 은행나무 가지가 부러져 동무·서무·비각 등 주변 건물이 수 차례 파손되었음에도 이에 대해 위안제를 지내고 건물을 수리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보호를 받아 약 500여 년간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성균관을 지켜왔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가 “일부 외과수술로 변형되어 있으나 전체적으로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수형이 수려한 노거수로 그 역사적 유래와 변천이 확인되고 있어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할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고 의결(2014.1.10.)하였다.

한편, 한양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산(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의 산자락에는 울창한 수목과 바위, 맑은 계곡 등으로 수려한 풍광을 가진 곳이 많아 이름난 유학자들도 풍광이 수려한 경승지에 별장을 짓고 시회를 열어 아름다운 자연을 찬미하고 학문을 수련하며, 인격 도야의 장으로 활용하였는데, 이러한 흔적들 중의 하나가 바위글씨이다.

<삼청동문(三淸洞門)>은 성현의 ‘용재총화’에서 도성 안 제일의 경치로 꼽힌 삼청동의 입구에 새겨진 바위글씨로 조선시대 각종 문집 및 고지도에서도 확인되는 삼청동의 입구를 가리키는 지표이자 글씨 자체도 현판대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뛰어난 글씨이다. 글쓴이에 관해서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경문이나 이상겸의 글씨로 전하여지고 있다.

<백호정(白虎亭)>은 사대부들이 심신수련 방법의 하나로 즐겼던 활쏘기의 연습을 위해 지었던 민간 활터인 인왕산 오사정(五射亭) 중의 하나이다. 현재 배화여대 복지관 쪽 암벽에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지역의 역사적 유래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특히 글쓴이가 숙종 때 명필가로 유명한 엄한붕(1685~1759)으로 전해지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 오사정 : 등과정(登科亭), 등룡정(登龍亭), 운룡정(雲龍亭), 대송정(大松亭), 백호정(白虎亭)으로 현재 그 자취는 사라지고 없다.

백호정에서는 1918년까지 활쏘기가 이루어졌으며(1918년 06월 04일자 每日申報), 1920년에 붕괴(1920년 05월 12일자 東亞日報)되었던 기록이 확인된다.

<월암동(月巖洞)>은 현재 홍난파 가옥의 남서쪽 바위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결구가 치밀하고 풍격이 고고한 조선 중기 이후의 글씨체이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고종시기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와 조선 후기의 학자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그 지명의 유래와 관련된 기록이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삼청동문>, <백호정>, <월암동>의 바위글씨 3건이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할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고 의결(2013.12.13.)하였다.

문화재 지정 후, 서울시는 <삼청동문>과 <백호정>, <월암동> 일대의 수려했던 자연경관 회복을 위한 보존정비 방안을 장기적으로 검토·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서울시는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와 바위글씨인 <삼청동문>, <백호정>, <월암동>에 대한 서울시 문화재지정계획을 1월 16일자로 공고하고, 2월 17일까지 약 30일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3월 중 각각 서울시 기념물과 문화재자료로 최종 지정고시할 예정이다.

황요한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앞으로도 서울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담긴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문화재로 지정, 제도적으로 보존하고 보다 철저히 보존·관리하여 전 시민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후세에 길이 남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 <삼청동문>, <백호정>, <월암동>에 대한 서울시의 문화재 지정계획과 관련하여 의견이 있는 분은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2133-2639)로 제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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