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쌍둥이, 태어났던 병원에 모두 간호사로”

“네쌍둥이, 태어났던 병원에 모두 간호사로”

  • 임선혜 기자
  • 승인 2010.02.1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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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네쌍둥이 자매가 전원 간호사가 되었다. 그것도 네 명 모두, 태어났던 병원에 취업해서 같은 날 하얀 가운을 입었다. 기이한 인연의 주역은, 빈한한 광원(鑛員)집안의 네쌍둥이 황슬(21), 설, 솔, 밀 4자매.

1989년 1월11일 인천시 구월동 가천의대 길병원(이사장 이길여)에서 태어난 이들 네쌍둥이는 16일 이 병원에 첫 출근해 가운을 입고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간호부장의 설명을 듣고 원내를 돌아보는 네 명의 햇병아리 간호사들의 얼굴은, 기대와 설렘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21년 전, 이들은 하마터면 세상 빛도 못 볼 뻔 했다. 1989년 1월 당시 강원도 삼척에서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 황영천(56)씨와 어머니 이봉심(56) 씨는 출산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어머니 황씨는 친정인 인천의 어떤 작은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출산예정일에 앞서, 갑자기 산모의 양수가 터졌다. 당황한 이 병원에서는 “인큐베이터가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산모와 가족은 서울로 가느냐 마느냐 우왕좌왕하다, 수소문 끝에 길병원 문을 두드렸다. 길병원 산부인과 팀이 오전 9시경 네쌍둥이의 분만을 무사히 도왔다.

산모와 가족은 당장 입원비며 인큐베이터 비용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이길여 이사장은 “병원비를 받지 않을 테니, 건강하게 치료받고 퇴원하라.” 달랬다. 며칠 후 네쌍둥이와 산모가 퇴원할 즈음, 이 사장은 산모를 찾아가서는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대줄테니 연락해 달라.”고 했다. 가정 형편이, 아무래도 대학 공부를 시키지 못할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학비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헤어진 이후 서로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2006년 9월 이길여 이사장이 사진첩을 정리(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연재 중 필요한 사진을 찾던 중)하다가 우연히 네쌍둥이와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는 18년 전의 약속을 떠올렸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이들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 네쌍둥이 가운데 슬과 밀은 수원여대 간호학과에, 설과 솔은 강릉영동대 간호학과에 수시 합격했으나 학비 마련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2007년 1월10일 이 이사장은 이들 자매에게 입학금과 등록금으로 2300만원을 전달해 18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 이 자리에서 이 이사장은 네쌍둥이에게 또 하나의 약속을 추가했다. “너희가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기만 하면 전부 길병원 간호사로 뽑아줄게. 네쌍둥이가 우리 병원에 와서 같이 근무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동일한 사람이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병동을 다니면서 환자를 돌보는 줄 알 거야.” 이후 지난 해 까지 이 이사장은 3년간 해마다 네 명의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 왔다.

네쌍둥이들은 이 이사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3년간의 학업과정을 마쳤고, 이달 10일 간호사 국가고시에 전원 합격. 3년 전 약속대로, 이들은 모두 길병원 간호사로 채용되었다. 수원과 강릉으로 흩어져 살았던 네쌍둥이는 지난 11일 가천의대 길병원 근처로 이사 왔다.

네쌍둥이의 맏이인 황슬 씨는 “이길여 이사장님께서 약속을 모두 지켰듯이 우리 자매들도 3년 전 회장님에게 약속 드렸던 대로 가난하고 아픈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열심히 섬기는 가슴 뜨거운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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