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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야기꾼 김종광 소설가의 첫 역사소설 ‘왕자 이우’

최고의 이야기꾼 김종광 소설가의 첫 역사소설 ‘왕자 이우’

  • 오은정 기자
  • 승인 2014.02.0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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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야기꾼 김종광 소설가의 첫 역사소설 ‘왕자 이우’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은 일제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일본 황실과의 혼혈 결혼 정책은 조선 왕실을 무력화시키는 데 가장 큰 핵심이었다. 조선총독부와 궁내성은 영친왕이나 덕혜옹주처럼 조선 왕족을 일본 황실과 강제 결혼시켜 조선인을 내선화시키는 ‘홍보 도구’로 이용되었다. 조선 왕족이 조선총독부와 궁내성에서 내정한 결혼 상대를 거부한다는 것은 일본을 반대하는 행위였고 곧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다.

민족의식이 높았던 의친왕 이강의 아들 이우는 흥선대원군의 종손인 이준용이 사망하자 고종의 뜻에 따라 이준용의 양자로 들어가 운현궁을 물려받았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다정한 성격, 복잡한 서열관계 속에서도 왕실 가족을 일일이 챙겨 ‘운형궁 오라버니’라 불렸다. 그가 결혼할 나이에 이르자 궁내성은 그 또한 일본 황실과 결혼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우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왕실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나는 왜황녀와 결혼하지 않겠다… 이왕 전하, 덕혜 고모님, 이건 형님, 그 다음엔 누가 왜황족과 결혼하게 되겠느냐? 나다. 허나 나만이라도 왜황족과 결혼하지 않겠다. 나만은 그따위 정략결혼에 희생당하지 않겠다.” - ‘왕자 이우’ 본문에서

이우는 박영효의 손녀 박찬주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국내 안팎의 반대가 극에 다다른다. 그는 여러 난관에 부딪친다. 천황의 칙허를 받지 않고 혼약을 추친하였기에 궁내성과 총독부의 반대가 있었다. 그리고 박찬주의 부친 박일서가 서자라는 이유로 종친들이 반대했다. 또한 박영효가 이우의 양부 이준용을 사형에 처하려다가 유배를 당한 사건 때문에 양모 이준공비의 반대에 부딪친다. 이우는 포기하지 않고 박찬주와 결혼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이용한다. 끝내 궁내성은 박찬주를 동경학습원에 수학케 하고 공비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한해서 결혼을 추친한다고 합의했다.

꽃피는 5월 이우공 전하와 결혼식전을 거행하게 된 박영효 후작의 영손 박찬주양은 경사로운 날을 앞에 두고 (…) 즐거운 앞날을 기다리는 중이신바 왕방한 기자에 대하여 ‘결혼에 대한 말만은 용서하여주시고 사진만 찍으세요’라 하며 명랑하고 단아하게 ‘렌즈’앞으로 나아섰다. 박양은 방기 21세로 경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여자학습원을 작년에 마치고 화양요리며 재봉 생화 등 각 방면에 취미를 가졌을뿐더러 ‘스켓트’에도 능한 여인이다. - ‘매일신보’ 1935년 1월 25일자

이우의 결혼은 목숨을 건 세기의 로맨스였다. 이우는 자신의 결심대로 왕조의 자존심을 지켰다. 김종광 소설가는 역사소설 ‘왕자 이우’(다산책방)에 조선 최고의 로맨티스트다운 이우의 모습을 담아냈다. 일제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도 일본에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사랑까지 쟁취한 이우의 일생이 소설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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