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뉴스

김현, 조동현 부부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 출간

김현, 조동현 부부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 출간

  • 오은정 기자
  • 승인 2013.11.22 1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현, 조동현 부부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 출간

일류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대한민국이지만 이를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눈앞에 다가온 초고령화 사회는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저출산, 경제활동인구 감소, 턱없이 부족한 복지예산 등과 맞물려 우리 사회의 성장을 더디게 하고 있다. 이에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당사자인 ‘노년층’이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대표 권선복)에서 출간한 책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는 가치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가장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현(요셉), 조동현(피나) 부부는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느 청장년 못지 않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무언가 열심히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 자체가 축복이요, 행복으로 가득한 노년이기에 더욱이 부부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큰 관심사로 다가온다.

물론 아름다운 황혼을 기대하는 예비 노년층이 주 독자층이지만 그 어느 연령대의 독자라도 이 책을 통해 삶의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필자 부부의 사랑이야기, 인생이야기는 화려하진 않지만 그 소박함, 진솔함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 누구에게나 따뜻한 미소를 안긴다. 또한 고령화가 이미 사회 곳곳에 큰 여파를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역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참으로 운 좋게도 서로 좋은 배필을 만나 어언 45년을 해로하였고, 그중 절반에 이르는 세월을 ‘부부 배낭여행가 1호’ 소릴 들으며 살아왔으니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70세 중반의 나이에도 문화산책 <청류회>와 여행클럽 <2Hyuns’ Travel Club>을 이끌고 있는 우리 부부의 삶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행복한 노년기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길 바란다.”라는 필자 부부의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문화산책 청류회(淸流會)는 김현·조동현 부부의 주도 아래 월 1회 연극, 영화, 음악, 오페라, 그리고 각종 전시회와 박물관 참관은 물론이고, ‘포도주 시음회’, ‘테이블 매너 실습을 겸한 만찬’ 등의 행사를 갖는 일종의 문화단체이다. 필자 부부의 남다른 정성과 노력으로 18년째 그 명맥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으며, 2014년 1월 뜻깊은 200회 기념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2Hyuns’ Travel Club>은 ‘대한민국 부부 배낭여행가 제1호’라는 별칭에 걸맞게 필자 부부가 1999년부터 공동 대표가 되어 이끌어 오고 있다. 12년간 출연했던 KBS TV의 ‘세상은 넓다’를 비롯하여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언론매체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발족된 여행클럽이다. 지난 15년간 <2Hyuns’ Travel Club>을 통하여 평균 15명씩 년 2~3회 해외여행을 다녀온 바 있다.

이들 부부는 일흔을 넘긴 현재까지도 이 두 가지 일에 역점을 두고 살아간다. 또한 70대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매진하면 얼마든지 노후를 신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장기 기증을 서약하여 이 세상에서 받은 모든 것을 다시 아름답게 되돌려주려는 노부부의 일과 사랑, 여행과 신앙이야기를 읽다 보면 새삼 행복이 곁에 다가와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저자소개

김 현(金 炫)
1939년 1월 25일 서울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수료
1963년~1994년 KBS 및 TBC PD 역임
한국가톨릭 언론인회 회장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부회장
재속 프란치스코회 75주년 기념위원회 부위원장
가톨릭대 강사
여의도 클럽 상임 부회장
한국 방송인 동우회 부회장
한국 여행인 클럽 회장
한국 관광인 클럽 공동 대표
문화산책 청류회 회장
‘방송인 사이버 명예의 전당’ 심사위원
한국 관광공사 주최 ‘올해를 빛낸 관광인’ 선정 심사위원장

조동현(趙東賢)
1942년 9월 4일 충남 출생
서울대 사대 영어과 졸업
서울여상 등 교사로 33년간 근무
2Hyuns’ Travel Club 공동대표
남편 김현과 함께 부부배낭여행가 제1호로 불림

저서
‘해외 여행에 꼭 필요한 158가지 도움말’
‘여보, 우리도 배낭여행 떠나요’ (부부공저)
‘여보, 우리 함께 떠나요’ (부부공저)
‘하늘에도 길이 있다’
‘나의 아이들 하느님의 아이들’
‘사목자의 리더십과 봉사자의 자세’
‘김현·조동현 부부의 세계 도시기행’ (부부공저)
‘당신 안에서 행복했습니다’
‘한국 첫 프란치스칸 사제 오기선’ (부부공저)

<목차>

005. ............ 프롤로그
010 ............ 축하합니다!

Chapter 1 - ‘지구’라는 별을 함께 여행하는 부부
018 ............ 그 모든 여행은 당신이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대한민국 부부 배낭여행가 제1호·인생의 반려자, 여행의 동반자·늙은 부부 짐 꾸리던 날·나는 짐 꾸리기 선수!·좀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2Hyuns’ Travel Club을 이끄는 부부 이야기·아내와 함께 쓴 해외여행기
047 ............ 기억에 남는 인터뷰
CBS 라디오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월간 여행지 Travie의 ‘부부가 함께여서 더욱 행복한 인생’

Chapter 2 - 70세까지 살아온 이야기
065 ............ 방송과 함께한 50년의 삶
할머니와 방송국·초대 모니터 시절·400대 1의 여원사와 KBS 합격·방송문화연구실과 국제방송국 기획실, 그리고 동양방송·잊을 수 없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 ‘오후의 로터리·32년간의 라디오맨·퇴직했어도 여전히 방송인·제2의 인생, 프로듀서에서 여행 연출가로!
089 ............ 교직생활 33년의 시작과 끝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부모님·선생님으로서의 첫걸음·첫 부임지 문영여중과 이에리사·서울여상에서의 31년·잊지 못할 졸업생들

Chapter 3 - 부부의 하루 일과 & 고마운 분들
122 ............ 부부의 하루 일과
도심형 실버타운(Silver town)에 사는 기쁨·70대도 이곳에서는 젊은이!·매일 바치는 기도·문화산책 ‘청류회(淸流會)’·은퇴 후에도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눈부신 황혼
153 ............ 고마운 분들
한국 첫 재속 프란치스칸 사제 오기선 신부님·아, 그리운 김몽은 신부님·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님·평화와 기쁨을 주는 윤루가 주교님·석양배(夕陽盃) 나누던 시인 구상 선생님

Chapter 4 - 우리들의 신앙생활
186 ............ 믿음이 있기에, 그대가 있기에
내가 만난 천주교·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일원으로·일과 신앙·신앙인으로서의 활동·자식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아들을 천주교 사제로 둔 이야기·좋은 반쪽이 되려면·자녀를 위한 기도·마음의 울림

Chapter 5 -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237 ............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를 부르신다·오늘이 나머지 인생의 첫날·죽음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나의 유언장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묘비명은 이렇게·아름다운 마무리

<미리보기>

나는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늘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그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가’로 살겠다는 것이었다. 여행가 중에서도 가장 적은 비용으로, 자유롭고 알뜰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배낭여행가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 “하늘에는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 해외여행은 김찬삼”이라는 말이 있었다. 안창남 씨는 비행기 조종사였고, 엄복동 씨는 자전거 선수였다. 김찬삼 씨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해외 여행가였다. 이렇게 한 가지 분야에서 1인자로 살고 있는 분들이 무척 부러웠는데,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나 역시 어떤 분야에서든 1인자가 되고 싶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부부 배낭여행가’였다. 내 뒤를 이어 아내가 교직에서 물러나 합류하였고, 여행자유화 이후부터 우리 부부의 본격적인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배낭여행을 그것도 부부동반으로 다니게 되자,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가 ‘부부 배낭여행가 1호’로 불리게 된 것이다.
19~20쪽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운동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기관장 시절 직접 테니스장을 만드실 만큼 운동을 좋아하셨고, 실제로도 정구선수셨다. 나 역시 이런 아버지의 소질을 물려받아 초등학교 때부터 피구, 배구, 정구 선수를 했었고 서울대 시절에는 배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었다. 이 덕분에 나는 누구보다 운동선수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에리사의 행동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결국 이에리사를 교무실로 불러들여서 무릎을 꿇게 하고 손을 들게 했다. 그러고는 무척 엄하게 야단을 쳐주었다. 선생님 부임 첫 해인 2학년 초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햇병아리 선생님이 참 겁도 없었다. 그 유명한 이에리사에게 그렇게 혹독한 벌을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내게 혼쭐이 난 이후인 2학년 2학기부터 이에리사가 훌륭한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 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정현숙과 복식으로 출전해 우승까지 거머쥐었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뿐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중에서야 교무실에서 벌을 받았던 이야기가, 그녀의 책 ‘2.5g의 세계’에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인생을 좌우한 사건이라면서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나와 스카우트 선생님을 언급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무척이나 고맙고 명예로운 일이었다.
99~100쪽

그러던 중 우연히 도심형 실버타운을 분양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가서 보기나 하자.”고 들렀던 곳이, 지금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그레이스 힐(Grace Hill)’이다. 실제로 와서 보니 이미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준이 꽤 높았다. 국가 고위직부터 시작하여 각 대학 총장들, 의사, 박사 등등. 게다가 하루 스케줄이 꼼꼼하게 짜여 있어서, 각자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내가 걱정했던 식사 역시 영양사가 있어 매끼마다 열량표와 함께 바나나, 양파, 토마토 등의 노인에게 좋은 식단으로 세심하게 꾸며져 있었다. 또한 뷔페 형식이어서 가짓수도 많고 자기 건강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었고,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어 당뇨환자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도 실버타운 구조 자체가 휴식과 각종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 같았다. 여기에 호텔처럼 사람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큰 로비와 좋은 정원까지 갖추고 있었다.

더불어 피트니스 센터, 수영장, 실내 골프장, 탁구장, 사우나, 찜질방, 노래방 등의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자신이 선택한 프로그램 이외에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가족은 물론이요 지인까지도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었다. 특히 우리 부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심형 실버타운답게 ‘그레이스 힐’이 교통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바깥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9호선 가양역을 바로 옆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고 공항철도 이용도 용이하며 강남까지 25분밖에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이밖에도 게스트하우스까지 있어, 멀리 외국이 나 지방에서 오는 방문객들을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에 호텔 못지않은 수준으로 쉬게 해줄 수 있었다. 직접 이곳을 둘러보고 나서야, 실버타운이 외롭고 불쌍한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게 되었다. 요즘 와서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실버타운이 일상의 연장이며, 오히려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생활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입소를 꺼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자리가 없어 들어오지 못한다 하니, 몇 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124~126쪽

이후에도 운 좋게 저는 추기경님을 곁에서 계속 모실 수 있었습니다. 1998년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임 미사와 미사 후의 축하연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여의도클럽이 주최한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하는 오찬’ 행사의 기획과 사회를 맡기도 했습니다. 2001년의 추기경님 팔순 축하연에 참석한 것도 저로서는 즐거운 추억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누구의 의견이든 존중해 주셨고, 한 번 믿으면 철저하게 도와주셨던 분입니다. 그렇지만 추기경님 곁에 늘 좋은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고뇌까지도 내색하지 않고 가슴으로 품으셨던 분이기에, 추기경님을 더욱 존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또한 사제 서품식장에서 늘 신부님의 부모님들을 격려해 주시던, 추기경님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제 큰아들의 신부 서품식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추기경님 덕분에 학부모님들이 아들들을 신학교에 많이 보내게 되었다고 하니, 추기경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대로 살아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진솔하고 소박한 일상의 모습 역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주교관 옛 테니스 코트에서 조금은 엉성한 폼으로 테니스를 즐겨 치셨고, 자동차도 고급 승용차가 아닌 스텔라를 고집하셨으며,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주로 명동성당 근처의 YWCA를 이용하던 분이십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분명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추기경님과 저는 성과 본이 같은 광산(光山) 김씨여서, 그 점도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 면 Cardinal Kim과 같은 일가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에 들기 전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나온다면, 저는 분명 김수환 추기경님일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172~174쪽

내게는 좌우명처럼 받드는 몇 가지 삶의 원칙이 있다. 첫째, 기쁘게 살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있어 항상 웃는 낯이냐고 묻기도 하는데, 나는 꼭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기쁜 낯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쁘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좋은 일도 생기고,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내 모습에서 웃는 낯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웃는 낯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 것 같다고 말해 주고 싶다.

둘째, 열심히 칭찬해 주는 역할을 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삶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칭찬 받을 일이라곤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사람이 허다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일수록 칭찬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바른 길로 가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칭찬해 주는 역할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가정과 사회를 밝게 하고 나 자신이 평화로울 수 있는 길이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셋째, 옳은 일은 열심히 그것도 과감히 밀어붙이며 살자는 것이다. ‘밀어붙이다’는 표현이 귀에 거슬릴지 모르지만, 좋은 의미에서 밀어붙이는 것은 활력을 가질 수도 있고,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53~254쪽

축하합니다!
최홍준 파비아노(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회장)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자란 한 젊은 남녀가 어떤 계기로 만나서 혼인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자녀를 가르치며, 노년이 되도록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분위기를 자아내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김현 회장 내외분은 일과 신앙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모범적으로 해 오신 선배임에 틀림이 없겠습니다. 이번에 요셉과 피나 부부 -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신 두 분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늘 은총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 듬뿍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두 분은 70대 나이에 그것도 건강이 썩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산책 <청류회>와 여행클럽 <2Hyuns’ Travel Club>을 이끌고 계십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데 다소 무리가 따를 텐데도 과감하게 떨쳐버리시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70대의 하루하루를 신나고 보람 있게 살아가십니다. 단 하루도 허송세월하지 않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며, 작은 것에도 늘 감사하고, 참다운 신앙인으로서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방송인과 선생님, 여행가와 신앙인으로 살아오신 두 분의 발자취가, 이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주어진 것에 불평하지 않고 하루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두 분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김현 요셉 회장은 저에게 맨 처음 교구 일을 하도록 다리를 놓아주신 분입니다. 1981년이면 제가 방송국 직원 신분을 내려놓고 프리랜서 작가로서 열심히 방송 대본을 쓰고 있을 때였는데, 총연출을 맡은 김현 회장께서 저에게 여의도광장에서 있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행사 대본을 써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10월에 열릴 행사를 두어 달 앞둔 시기였고, 저는 기쁘게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중에 ‘행사 대본’을 작성하게 됐고, 이 일을 계기로 그해 12월 한 달 동안 로마를 비롯한 유럽 15개국 교회를 순방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그해 10월 18일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된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에 김 회장과 함께 ‘연출석’에서, 행사 진행 상황을 체크하며 진행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멘트를 제시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두 차례에 걸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교회 사목방문 행사 대본을 작성하는 일도 맡아보게 됐고, 이 경험은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한국평협 회장으로서도 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한 번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몽은 신부님이 사제 양성의 못자리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설교학’을 강의하실 때, 요셉 회장의 추천으로 저도 함께 6년여 동안 부제반(副祭班)을 드나들며 김 신부님과 부제님들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 김 요셉 회장은 마이크 사용법과 말하는 법에 대해서 중점 강의했고, 저는 강론 원고 작성 등에 관해서 도움이 되고자 했으며, 세 사람 다 같이 부제님들의 ‘강론 실습’을 도왔습니다.

1980년대에 가톨릭 저널리스트클럽 회장으로서 한국평협 부회장을 맡기도 했던 김 요셉 회장은, KBS 교우회 창립에도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입니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가져가고자 사도직에 정열을 불태우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루르드 성지 순례 때 흰색 옷에 푸른 색 띠를 두른 성모 동고상 앞에서, 맏아드님의 사제성소를 위해 기도하시던 모습이 제 뇌리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부부가 함께 아드님 사제를 위해 기도하는 어버이로서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 기록이 이 책 곳곳에 묻어 있음을 보는 것은 저에게도 큰 기쁨입니다.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기차고 보람되게 살아가시는 두 분의 삶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이 순간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허송세월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따뜻하고 희망찬 삶의 메시지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요셉과 피나 부부 -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