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 벤데타' 3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출시

'브이 포 벤데타' 3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출시

  • 오은정 기자
  • 승인 2020.05.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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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의 다섯 번째 날을...”

끔찍한 핵전쟁이 일어나고 약 10년이 지난 1997년.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영국은 극우 독재 정당 ‘노스파이어’가 지배하고 있다. 강력한 국가체제 앞에 개인의 자유는 사라지고, 오로지 감시와 통제만 존재할 뿐이다. 이 회색빛 런던에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브이(V)’. 그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

앨런 무어가 쓰고 데이비드로이드가 그린 『브이 포 벤데타』는 ‘그래픽 노블’의 명작으로 꼽히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다. 2005년에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해 큰 인기를 끌었고, 특유의 문학성을 인정받아 2019년 영국의 국영방송 BBC가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00권’에 오르기도 했다.

시공그래픽노블은 2018년 미국에서 이 걸작의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며 출간됐던 특별 에디션의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2009년 국내에 소개됐던 기존 도서의 번역을 다시 다듬었고,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로이드가 쓴 서문을 추가했다. 그밖에 무어가 쓴 작품 탄생에 얽힌 비화 ‘그려진 미소의 이면’과 로이드가 해설한 스케치북 섹션도 덧붙였다.

한층 더 고급스럽게 재탄생한 『브이 포 벤데타』 30주년 기념 에디션은 그래픽 노블을 사랑하는 팬은 물론, 자유와 신념·국가와 개인·혁명과 해방이라는 유구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브이 포 벤데타』 첫 번째 에피소드는 1982년 영국 잡지 『워리어(Warrior)』에서 시작됐다. 시리즈는 1985년까지 인기리에 연재됐지만 『워리어』가 폐간되며 중단, 이후 1988년 DC코믹스에서 컬러 완결판 만화를 출간했다.

로이드의작화는 어두운 런던 골목길에 강렬한 라이트를 비춘 듯 매 컷마다 명암이 뚜렷하다. 선은 우직하고 질감은 건조하다. 이렇게 그려진 작품 속 영국 사회는 지극히 암울하다. 전 세계적 핵전쟁이 끝난 뒤 영국은 철저한 경찰국가로 바뀌었다. 예술과 언론은 금지되고 정당이 방송하는 ‘목소리’만 허락된 사회. 권력의 ‘코’와 ‘손가락’이 된 경찰이 시민의 숨소리까지 감시하는 사회. 유색인종, 성소수자, 사회 저항세력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실험체로 쓰이거나 몰살되는 끔찍한 사회가 바로 작중 1990년대의 영국이다.

파시즘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현실에 기반한 것이다. 조지 오웰의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무어는,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정부의 극우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작품에 녹여냈다. 1988년 DC코믹스에서 출간된 1권 서문에는 당시 영국 사회에 대한 그의 피로감이 또렷이 묻어난다.

“지금은 1988년이다. 세 번째 임기에 돌입한 마가렛 대처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다음 세기까지 깨어지지 않고 이어질 보수당 집권 계획을 말한다. (...) 타블로이드는 에이즈 환자를 격리 캠프에 수용해야 한다는 발상을 전국에 퍼트린다. 시위 진압 경찰과 그들이 타는 말에는 검정색 신형 얼굴가리개가 지급되고, 차량 지붕에는 360도 회전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된다. 정부는 동성연애를 실체뿐 아니라 그 추상적 개념까지 현실에서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며(...) 나는 2, 3년 안에 가족과 함께 이 나라를 뜰 생각이다.”

작중 가면을 쓴 수수께끼의 테러리스트 ‘브이’는 공권력의 핵심부를 차례차례 폭파시키며 파시즘 정권과 사회에 균열을 낸다. 동시에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대학살에 대한 복수를 이어간다.
그는 자신의 테러를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믿지 않는 쪽에 가깝다. “넌 더 이상 내 정의가 아니야, 넌 이제 그자의 정의다”라며 정의의 여신상을 파괴하는 장면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체제의 폭력에 대한 처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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