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성북 N 작가공모 ‘현기증 Vertigo’ 展 성북예술창작터에서 10월 25일까지 전시

2019 성북 N 작가공모 ‘현기증 Vertigo’ 展 성북예술창작터에서 10월 25일까지 전시

  • 오은정 기자
  • 승인 2019.10.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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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작가의 개성 있고 다채로운 작업들을, 픽션이 현실이 되는 현 시대의 묵시록적 풍경 속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장면들과 연결지은 전시

보다 실질적인 작가지원의 해법과 확장된 지역성의 의미를 반영한 ‘성북 N 작가공모’는 올해로 4년째를 맞이했다. 성북 N 작가공모는 연령제한을 폐지함으로써 신진뿐 아니라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열심과 역량 있는 기성 작가들의 활동도 함께 지원하고 있으며, 타 지역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제공, 더욱 다채롭고 완성도 높은 성북의 예술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는 지원이 필요한 예술가와 완성도 높은 예술향유를 갈망하는 지역민 모두에게 유효하며, 성북 예술생태의 활성화와 지속가능성 도모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대가 가능하다.

또한 지원의 실질적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 연계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부터 비공개 ‘심층 토크’를 신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외부 전문가와 이를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작가들의 긍정적인 후기와 더불어 N 작가공모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올해는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유진상 교수가 함께 했으며, 작업의 조형적, 철학적 측면 외에 작가로 생존하기에 관한 현실적 제언들도 곁들여 본 프로그램의 취지를 더욱 충족시켜 주었다. 한편 ‘아티스트 토크’의 경우 일방향적 작품 설명회나 전문가의 선언적 멘토링이 아닌 양방향 토크를 지향하고 있다. 올해는 평론가 정현 교수가 함께 했으며, 심도있는 질문을 통해 작가들의 다양한 내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2016년부터 시작한 성북 N 작가공모에는 지금까지 강주리, 김도희, 박종호, 박창식, 신이피 작가 등이 선정되었고, 올해는 림유, 이현주, 편대식 작가가 최종 대상자가 되었다.

‘현기증 Vertigo’ 展은 세 작가의 개성 있고 다채로운 작업들을, 픽션이 현실이 되는 현 시대의 묵시록적 풍경 속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장면들과 연결지은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김소원 큐레이터(성북문화재단)는 “‘현기증(Vertigo)’은 아찔한 순간에서 느낄법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증상에서 연루된 제목으로, 세기말적 불안이 엄습한 시대상황 속에서 세 작가가 훅 찌르고 들어오는 어떤 순간의 경험을 기대해 볼 수 있으며, 이들의 작업 형식이 1차적으로 매우 다르지만 또 한편 매우 강력하게 연결된다”고 밝혔다.

1층에 들어서면, 연필선을 반복하고 중첩하여 검은 화면을 만들어 낸 편대식 작가의 작품이 현 시대에 유발되는 현기증을 고조시킨다. 믿기 힘든 노동집약적 작업에 대한 경외심과 무한대의 의문, 그리고 물질성과 정신성 등의 극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편대식 작가의 작품은 무관심, 혼란, 흥미, 경탄 등 여러 산만한 갈래의 길을 펼쳐 놓지만, 무엇보다 종교적 수행과도 같은 강력한 노동의 집약물을 통해 ‘인간 그 자체를 다시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힘’을 생성한다.

2층 계단을 오르면, 지금까지와 다른 유형의 작업에 낯설음과 당혹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내 그것을 넘어서는 기분좋은 투명함과 자유로움을 만나게 된다. 당대적인 철학적 질문에 뿌리를 둔 이현주 작가의 장소 특정적 설치 조각에는 대부분 주변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료가 사용되며 대부분 투명하다. 투명한 작품을 위해 작가는 비닐, 액상 실리콘, 아크릴 등을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포스트 휴먼시대의 예술가 주체성’에 관한 작가의 관심은 한편, 공간 여기저기에 중심 없이 흩어진 무언가의 흔적 같은 조형물들을 관람자의 상상으로 완성하라는 무언의 주문으로 이어지는데, 중심과 주변, 배경과 이미지의 구분에 대한 기존 조형규칙을 따르지 않고 있는 대상 앞에서 관람자의 눈이 초점을 잃고 3차원에 대한 감각을 놓칠 수다는 점, 고정관념을 뒤집어야 작업이 잘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 등에서 현기증이라는 주제와 맞닿게 된다.

2층 공간에 난 좁은 통로를 지나면, 앞으로 기울어진 벽면, 별안간 내려앉을듯한 천장, 가운데 빈공간이 모두 함께 아우성대는 연극무대 같은 장면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수없이 겹쳐지고 왜곡되어 스크래치 기법을 연상케 하는 림유 작가의 디지털 이미지가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카오스가 절정에 달한 듯 한 광경, 눈에 보이는 현실 그 뒷면을 보여주는 듯 낯설고 신비롭고 괴이한 광경들, 작가 스스로 ‘사이키델릭 파노라마’로 칭하는 광경들이 어쩌면 현실의 최전선인지도 모른다.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숨 막힐 듯 빽빽하게 겹친 추상적 이미지와 뚝뚝 끊어지는 의식의 흐름같은 영상을 또 다시 3차원의 공간에서 서로 겹치고 포개놓은 설치작업은 분간할 수 없는 시공간을 만들어 내며 일순간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을 유발한다.

이처럼 묵시록(Apocalypse)적 상상,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에서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서로 극히 다른 ‘예술도생(藝術圖生)’의 길을 보여주는 세 작가의 작업을 통해 관람자는 황홀한 혹은 아찔한 ‘현기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현기증은 이 시대의 혼돈, 고통, 불안 등에 대한 신호음 혹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반응일 수 있으며, 무엇으로 바라볼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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