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특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12편의 단편 '내가 만든 여자들'

젊은 작가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특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12편의 단편 '내가 만든 여자들'

  • 오은정 기자
  • 승인 2019.07.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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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수학교사로 일하다 돌연 퇴직하고 무급의 복싱 선수가 된 소설가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 후 특목고 수학교사로 일하다 돌연 퇴직하고 무급의 복싱 선수가 된 소설가가 있다. 바로 설재인 작가다. '내가 만든 여자들'은 이 젊은 작가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특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12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업에 갓 입사한 신입이 회식 자리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차장님의 손톱 밑에 핏덩어리와 머리카락이 엉겨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업무 처리나 능력 면에서의 완벽함이 ‘저러니까 여태껏 시집을 못 갔다’는 뒷담화와 ‘유능하지만 드센 여자’라는 평가받는 차장. 회식한 날 이후부터 신입은 그녀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회사든 식당이든 화장실만 다녀오면 들고 갔던 파우치가 불룩해지는 차장의 모습이 영 의심스럽다. 파우치 속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기에 차장의 손톱 밑이 피로 물들어 있는 걸까.

'내가 만든 여자들'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주 노동자의 혼인 문제(‘찡쪽, 리나’), 연인 사이의 폭력(‘엉키면 앉아서 레프트 보디’), 왕따 사건(‘앨리’)이나 성희롱으로 얼룩진 메신저 대화 내용을 내부고발 하는 학생들(‘불가능했던 것에 대하여’)과 같이 한때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웠던 사회 이슈부터 시작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바지락 봉지’) 같은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까지.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사건사고들을 평범한 주인공들이 재기발랄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거나 극복하지 못한 채 도망가는 모습은 때론 희망적이기도 하고 때론 비극적이기도 하다. ‘내가 만든 여자들’과 ‘처음 본 언니의 손을 잡고 집에 올 때’의 설재인 작가는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기도 한다.

설재인 작가는 현재 낮에는 복싱, 저녁에는 암벽을 등반하며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글은 ‘혹평 독자단’의 피드백을 받아 보완한 다음 마무리된다. 여기서 혹평 독자단이란 작가가 온라인상에서 모집한 혹평만 하는 독자들이다. 호평 대신 혹평을 들으며 자신이 쓴 이야기를 담금질하고, 교실 안 선생님 대신 링 위에서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상대방과 주먹을 겨루며 자신의 몸을 훈련시키는 설재인 작가의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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